형사 재판에서 정상 참작을 위한 변론을 준비하다 보면, 피고인의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쓸 만한 스토리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자주 떠오르는 속담이 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사람은 자기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더 정을 쏟고 감싸주기 마련입니다. 이는 객관적이어야 할 판단조차도 주관적인 감정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인간 본성을 보여줍니다.
형사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재판장과 학연이나 지연으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재판장이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신앙심에 기대어 피고인에 대한 온정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의뢰인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변론 전략 중 하나입니다.
특히, 재판장과 같은 종교나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성직자의 탄원서는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의식 중에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신앙은 판사의 마음을 움직인다.
예를 들어, 재판장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목사의 탄원서를, 성당에 다닌다면 신부님의 탄원서를, 절에 다닌다면 스님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재판장의 종교 성향을 파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노련한 변호사라면 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문제는 선무당 같은 변호사들이 이런 기본조차 놓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는 재판장의 종교를 잘못 파악하여, 교회를 다니는 재판장에게 스님의 탄원서를, 절에 다니는 재판장에게 목사나 신부의 탄원서를 제출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안으로 굽는 팔을 밖으로 억지로 꺾으며 봐달라는 격”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상 참작을 제대로 이끌어내려면 단순히 종교인이 작성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가능하다면 재판장이 실제로 다니는 종교시설의 성직자에게 탄원서를 받아 제출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같은 종교, 같은 신앙을 기반으로 한 진심 어린 탄원이야말로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선무당 변호사의 또 다른 치명타는, 가짜 탄원서를 만드는 무모함입니다. 실제로, 가짜 결혼식 청첩장으로 재판장을 속이려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처럼, 종교인 탄원서를 위조했다가 발각되어 더 큰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탄원서 한 장에도 진심이 담겨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종교인의 탄원서를 제출해 왔습니다. 그 결과 재판장들도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탄원서 작성자의 신원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필자는 과거 종교인의 탄원서를 받을 때, 해당 종교인의 휴대폰 번호를 함께 기재하여 재판장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휴대폰 번호가 정확히 기재된 탄원서에 대해서는 오히려 확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무당 변호사는 여기서도 꼼수를 부립니다. 가짜 연락처를 써 넣었다가 들통나 감형은커녕 실형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직자에게 탄원서를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피고인이나 가족들의 진심 어린 부탁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재판장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법원 직원이나 법조 기자들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변호사라면 이 정도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기본입니다.
성경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형사 재판에서 종교인의 탄원서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진심 어린 한 장의 탄원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한 장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본성을 건드리는 마지막 손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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