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본분은 자신이 직접 취재한 사실만을 기사화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그 글에 기자 개인의 생각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언론사나 기자들이 이 본분을 망각하고, 취재한 내용에 편향된 정치 성향을 덧붙여 마구잡이식 소설을 쓰는 일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는 언론계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병폐다.
모든 사회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부에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언론 집단은 그 어떤 집단의 대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취재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고, 정치적 편향을 섞어 소설처럼 전달하는 뉴스는 더는 기사라 부를 수 없다.
이는 진실을 왜곡해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국정 문란의 반 국가 세력에 언론이 본분을 망각하고 공익을 해치는 행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신문기사는 대체로 이렇게 쓰였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다.” 기자는 중립적으로 팩트만 전달했지, “참담할 뿐이다”와 같은 감정 섞인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기사들을 보면 “사실상 어떻다”, “참담할 뿐이다” 같은 문장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이는 기자의 개인적 바람이거나 감정일 뿐,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뉴스 기사와 에세이, 칼럼, 소설의 구분이 흐려진 것이다.
기자들이 쓰는 “사실상 어떻다”는 표현은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본인의 희망적 해석이고, “참담할 뿐이다”는 기자의 감정 표현일 뿐이다.
이건 소설가의 어법이다. 기자의 감정 표현이 기사에 포함된 순간, 그 기사는 뉴스가 아니라 감성 조작물이 된다.
요즘 기자들은 팩트 대신 감정, 균형 대신 편향, 공익 대신 조회수를 쫓는다.
그리고 정치집단의 대변인처럼 움직이며, ‘기사’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며 부패한 세력과 손을 잡고 돈을 쫓는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정부든 기업이든 국민이 궁금한 내용은 직접 질의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변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기자라는 중간 필터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기자가 특정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꾼으로 계속 살아가려 한다면 멸종될 것이다.
기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를 왜곡시켜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언론사주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기자가 정말로 필요한가? 사실만 정확히 전달하는 건 AI가 더 잘할 수 있다.
시스템으로 자동화도 가능하다.
국민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기자는 팩트 하나만 잘 전달하면 된다.
중립된 정보 플랫폼이 AI로 대체되기 전, 편향된 기사를 중단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자’가 아니라, ‘투명한 시스템’이다.
Steven S. Han
답글 남기기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