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사랑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하다며 온갖 학문을 가르치면서 정작 사람들의 행복한 사회생활을 위해 가르침이 필요한 사랑에 대해서는 왜 교과서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학자들은 왜 수백 년이 지나도록 사랑은 학문으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국가는 왜 청춘들이 사랑을 몰라 짝을 찾지 못하고 늙어가고, 사랑과 배신 때문에 발생하는 잔혹한 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사회문제를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사랑학을 만들어 가르치는게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혹시 사랑에 육체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어 학문으로 금기시하여 학교에서 가르치길 꺼리는 걸까요?
왜 아무도 진지하게 사랑학을 교육하려 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요즘 결혼을 포기하거나 관계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이유도, 사랑을 배우지 못한 탓이 큽니다. 육체적인 성교육은 있지만 사랑학 교육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이성과 행복하게 살 권리를 찾아 주려면 국가가 나서서 시민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들도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에,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조차 몰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첨단 인터넷이 있으면 뭐할까요? 주변에는 60, 70대 노인이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고, 사랑에 실패를 한번 하고 나서 독신으로 늙어가는 현실을 국가는 그저 한 개인의 팔자고 인권이니까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사회적 문제로 논의를 해봐야 할 때입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해 자꾸 실패하고, 반복되는 아픔을 겪다가 혼자 늙어가는 이웃들이 넘쳐나는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예쁜 단어지만, 실제로는 무섭도록 현실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사춘기 시절 이전에 가르쳐야 할 학문인 이유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픔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이별을 택해야 하는 아픔을 겪을때는 부모, 형제, 연인과의 사별 못지않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상처를 주고받다가 결국 이별하게 되면서 상대방을 배신자로 여겨 복수심을 갖는 것도 사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별을 당했다는 쪽에서는 흔히 배신당했다고 말하지만,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다가 관계를 망친 사실은 자각을 하지 못하거나 숨기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결국 사랑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기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복음성가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별을 겪어본 이들은 그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합니다.
현실 속 사랑은 그렇게 영원하거나 견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의심이 자라고,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속에서 작은 희망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합니다.
사랑은 요물이라고도 합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맹세하던 사람도, 마음이 변하면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립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에 인생이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서는 일을 사람들은 반복하는 것은 사회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이나 과학, 문학 등은 인생을 살다가 사랑에 실패를 하면서 겪게 되는 큰 아픔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걸 어른들은 모르는 걸까요.
『하버드 사랑학 수업』의 저자 마리 루티 교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라고 말합니다. 기술이라면 사람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하버드 대학에서 사랑에 대한 강의를 하며, 사랑이란 본능이 아니라 의지와 선택, 그리고 배움의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처음부터 완성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배워가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잘못된 신화를 믿고 있다”고 말하며,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본능 중심의 사랑 이론’이나 성별 고정관념이 오히려 사랑을 왜곡시킨다고 비판합니다.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통해 익히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 책의 핵심입니다.
정신적 교감 없이 육체적 끌림으로 시작된 관계는 처음부터 불균형합니다.
그걸 사랑이라 착각한 채 시작된 관계는, 교감이 사라졌을 때 파국을 맞고 상대를 배신자라 부르도록 만들고, 심하면 복수극까지 발생합니다.
그 비극의 시작은, 사랑을 배우지 않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가르치지 않은 책임이 더 큽니다.
사랑은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책임, 이해, 인내, 신뢰, 그리고 배움이 함께해야 유지됩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랑은 쉽게 무너집니다.
그저 “믿음, 소망, 사랑” 중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만 믿고 “사랑’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잘 모르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을 배우려는 지혜, 사랑을 이해하려는 교양을 갖춘 후 성숙한 사랑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사랑에 다치지 않고 사랑을 지켜내는 길이 될 것입니다.
Steven S.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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