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른다. 생각할 줄 알고, 도구를 만들고, 사회를 조직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능력이 인간을 정말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오히려 인간은 그 생각 때문에 더 복잡하고 더 괴로운 존재가 되었다. 불안, 비교, 욕망, 질투, 탐욕—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미래를 걱정하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동물들은 오늘 하루 먹을 것만 걱정하고, 개미는 일하다 죽어도 억울해하지 않으며, 고양이는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햇볕을 즐긴다. 우리는 그런 동물들을 보며 ‘행복해 보인다’고 느낀다.
(물론 이건 인간이 그렇게 ‘보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다른 짐승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쟤네는 왜 저렇게 복잡하게 사냐?” 하고 말이다.)
결국 생각 많은 인간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자기 인생이 억울하단다.
이쯤 되면 질문해야 한다. ‘생각하는 존재’는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인간은 지구를 가장 많이 파괴한 종이고, 다른 생명을 가장 많이 멸종시킨 존재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점령하고, 오염시키고, 경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방향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패한 권력은 그 길을 더욱 앞당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과연 ‘영장’의 모습인가?
오래전, 지구 곳곳에 살던 조상들은 자기 부족의 신이 하늘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다. 권력자들은 그 신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고, 시민을 다스리기도 했다. 때론 시민들이 종교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자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만물의 영장 인간은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지구 밖까지 나아가는 과학의 발전을 이뤘다. 1959년엔 달에 갔고, 1977년에 쏘아올린 보이저호는 48년째 우주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우주인들과 탐사선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사람들이 말하던 ‘하늘 위의 신’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종교인들은 말했다. “신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신을 잃을까 걱정한 사람들은 그 신을 영적인 존재로 받아들였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두고 종교인들과 다투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게 피곤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은 만물의 영장은 피곤하고, 불행하다.
어쩌면 곤충이나 동물들이야말로 더 단순하고, 더 솔직하고,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아직 하늘 위나 우주로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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